재테크
내 주머니에 들어와야 내 것
투자에도 참 많은 비용이 듭니다.
당장 매년 정산해야하는 금융소득세, 양도소득세, 종합소득세 외에도 매매 시 발생하는 거래수수료, 건강보험료, 운용수수료 등 얼른 보이지 않는 비용들이 여기저기 숨어있습니다.
저처럼 대출을 받아 투자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대출이자와 원금 상환도 고려해야하고요.
이 모든 비용을 제외한 순수익만이 오롯이 내 것이 되는 겁니다. 평가금액 보며 흐뭇해하다가, 익절한 뒤 날아오는 세금고지서와 세금납부 후 확 줄어든 잔고를 보면 세상 억울한 기분이 들 겁니다.
저는 저평가된(문제가 생겨 가격이 떨어진) 배당주를 골라 담고 배당받으며 기다리다가 가격이 오르면 파는, 아주 정석적인 배당주 투자를 5년째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사고팔고 배당도 받다보니, 3년 전부터 종합소득세 신고, 양도소득세 신고, 건강보험료 정산 등등 실현 수익에 따라오는 온갖 비용을 신나게 지불하고 있습니다.
대출관련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제가 벌어들이는 수익의 22에서 24퍼센트 정도가 세금과 각종 비용으로 사라집니다. 배당과 이자에는 7퍼센트가 넘는 건강보험료가 15.4퍼센트의 금융소득세 위에 얹어지고, 양도소득에는 22퍼센트의 양도소득세가 따라 붙으니까요.
실현수익 기준 제 투자수익률은 지난 4년 동안 매년 20퍼센트 정도입니다. 일반계좌는 추가투자가 없는 일종의 폐쇄계좌라서 계산이 쉬워요.
그런데, 제가 얻은 연 20퍼센트의 실현수익은 사실 27퍼센트 이상의 세전수익을 얻어야만 가능합니다. 전체 수익의 1/4 정도가 세금으로 사라지니까요.
이 문제 때문에 많은 분들이 일반계좌가 아닌 과세이연이 되는 IRP나 퇴직 계좌에 투자를 늘리는 것을 선호합니다.
은퇴가 많이 남은 분들께는 분명히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은퇴를 앞두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사람에게는 그 좋다는 과세이연 효과를 누릴 시간이 부족합니다.
여러번 얘기했던 대로 저는 15년 전에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으로 이어지는 3층 연금으로 은퇴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0년 쯤 지나고 보니 연금저축 펀드의 수익률이 정말로 참담하더라고요. 운용수수로는 비싼데, 장기로 놓고 봤을 때 적금보다도 못했습니다. 물론 연말정산 때 돌려받는 세금을 이자로 치면 나쁘지 않을지 모르지만, 재투자가 어려운 세금환급분을 연금저축 펀드 수익으로 계산하는 것은 타당해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5년 전에 3층 연금 위주의 수동적인 은퇴계획에 공격적인 미국주식 직접 투자를 얹기로 결정하면서, 10년 누적 4.7퍼센트 수익률의 개인연금저축은 제 포트폴리오에서 사라졌습니다. 대신 IRP 계좌를 하나 새로 만들어 연말정산과 채권, ETF 위주의 투자 연습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변경된 은퇴준비 계획에 따라 4년 넘는 기간동안 IRP, DC 계좌에서의 간접투자와 일반 계좌를 통한 직접투자를 병행해보니, 많은 분들이 절세 방안으로 제시하는 IRP나 DC 계좌를 통한 과세이연 효과는 은퇴까지 시간이 많아서 15 년 이상 장기투자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수익률의 차이에 있습니다.
ETF 의 수익률은 결국 시장수익률에 수렴하는 구조입니다. 본업이 있어서 많은 시간을 투자에 할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중도 인출할 수 없는 은퇴용 계좌에서 10년, 20년 이상 시간을 들여 자산을 키우는 용도에 딱 맞습니다. 14년 이상 투자하면 적립한 원금보다 투자수익이 많아지면서 본격적인 복리효과를 누리게 해줍니다.
하지만 은퇴가 10 년이 채 안 남아서(현재 잔여 기간 3년) 본격적인 복리효과를 누리기 어려운 입장에선, 무거운 세금을 내더라도 시장수익률 이상의 수익을 노리는 일반 계좌의 투자수익이 과세이연이 가능한 은퇴용 계좌의 수익률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 경우를 보자면, 3년 전에 전환한 DC 계좌와 5년 된 IRP에 적립된 원금이 5억입니다. 현재 평가 금액은 6억이고요. 안전자산 투자비율도 있고, 작년에 야심차게 준비했던 채권수익률이 기대에 못미쳐서, 누적수익률이 20 퍼센트에 턱걸이 했습니다.
반면 25만 달러(한화로 3억)로 시작했던 일반계좌는 실현된 수익을 포함해 50만 달러를 넘겼습니다. 실현 이익만 100퍼센트인 셈입니다. 여기에 아직 미실현한 이익도 10만달러 정도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경기변동에 따라 두 계좌의 수익률이 비슷해지거나 절세계좌의 수익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지만, 문제는 그 시간입니다. 제겐 시간이 없거든요.
투자와 은퇴전략에는 정석도 없고 왕도 역시 없습니다. 현재 가능한 모든 수단과 법적 제도를 충분히 검토한 뒤 각자의 상황에 맞춰 단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보완해야 합니다.
금융자산 투자가 늦어 은퇴까지 10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선, 은퇴계좌의 과세이연이나 분리과세도 중요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고령화 시대의 구매력 감소를 상쇄시켜줄 일반계좌의 규모를 일정부분 가져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경험을 참고해서,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정수입이 생긴 아들에게는 여유자금의 30퍼센트는 IRP에 적립하고, 나머지는 일반계좌로 적립하라고 조언했습니다.
20대엔 10년 이내에 결혼이나 집장만처럼 큰 돈을 써야할 때가 많으니까 자산이 묶이는 은퇴준비보다 목돈마련에 더 많은 자원을 배정하는게 맞습니다.
일반계좌에서도 ETF와 적금, 그리고 주식으로 나누어 돈을 모으라고 했어요. 자기 손으로 직접 해봐야 어떤 자산이 본인에게 더 잘 맞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IRP와 일반계좌, 주식과 저축, ETF의 비율은 나이가 들고 상황이 변하면 계속 조정되어야 한다고 얘기해줬습니다. 계좌에 쌓인 돈이 좀 늘어나고 자산관리 개념을 체득하게 될 1, 2년 뒤엔 ISA 계좌도 만들게 해야지요.
모두가 주식을 직접 투자하는데 재능을 갖고 있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ETF와 적금은 인내심만 있으면 확실하게 불어납니다.
자기가 번 돈을 잘 지키고 인플레이션만 따라잡아도 자산관리 측면에선 합격입니다.